이야기가 있는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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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전통시장
  • 심재학 기자
  • 승인 2019.05.0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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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봉일천시장

지난 2017년 11월 23일은 파주시 조리읍 소재 봉일천시장 상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파주시가 봉일천시장 일대를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전통시장으로 인정등록한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봉일천시장은 파주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조선시대 ‘공릉장’ 시절의 영광까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곳은 1990년 중후반까지 사람에 사람이 떠밀려갈 정도로 잘 나가던 시장이었다.

쇠락의 길을 걷던 봉일천시장은 인정시장 등록을 계기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상인회를 중심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봉일천시장은 빛나는 역사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풍부하다. 봉일천시장 상인회 및 조리읍 주민자치위원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스토리텔링 및 브랜드화해 지역 및 시장 활성화를 꾀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봉일천시장을 재미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세 가지 장면과 이야기를 소개한다.

 

옛 공릉우시장 모습

#1

공릉장(봉일천장)을 가득 메운 흰옷 입은 사람들

일제 강점기 때 열린 공릉 우시장(봉일천장)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다. 사진 속의 소와 소주인이 각각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여 당시 공릉우시장 규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08년에 발간된 <만기요람>에는 전국 15대 시장이 소개돼 있는데, 경기도 대표 시장으로 광주 사평장(沙坪場), 송파장(松坡場), 안성 읍내장(邑內場)과 함께 파주 ‘공릉장(恭陵場)’이 들어있다. 교통 요지였던 파주에는 정기시장이 잘 발달돼 있었다. 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은 “조선시대에는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상설상점이 없었다. 전국 10대 5일장에 파주의 공릉장과 문산포장 두 곳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파주에는 정기시장이 발달해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1830년 편찬된 서유구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역시 개성과 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에 있던 공릉장과 문산포장을 전국 대표급 시장으로 손꼽고 있다. 이윤희 소장은 “1938년 서울·경기·개성 일대 102개 재래시장 가운데 연간 거래 규모액 기준으로 볼 때 공릉장이 10위였다. 공릉장은 소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파주 공릉장 만세운동 재현행사

#2

봉일천 공릉장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1919년 3월 27일은 봉일천 공릉장날이었다. 이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단지 장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일제의 압박에 항거,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시위를 전개한 만세운동이 이곳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심상각‧김웅권‧권중환 등 파주지역 대표 19명이 주도한 이날 시위는 파주 지역주민뿐 아니라 인근 고양군 일부 주민까지 포함된 대규모 시위였다. ‘공릉장 만세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위는 한강 이북에서 벌어진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꼽히고 있다.

이날 광탄면에서 만세시위를 벌인 2,000여 명의 군중은 봉일천리의 공릉장까지 6.5㎞를 행진했고, 이미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던 1,000여 명의 군중과 합세했다. 그들은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벌였고, 봉일천 헌병주재소를 공격했다. 당황한 일본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로 총격을 가해 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날 봉일천 공릉장 시위에는 파주 군민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적극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세운동이 벌어진 공릉장, 즉 봉일천시장은 파주의 항일독립운동 역사를 증명하는 유적지로서 보존할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3

청록파 시인이 머물던 봉일천 주막

‘여기는 파주땅 봉일천리.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술을 마신다.’, ‘봉일천 주막에 해가 지는데….’ <낙화>‧<승무> 등으로 잘 알려진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미발표작 <봉일천 주막에서> 중 일부 내용이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되자 조지훈 시인은 그해 10월 평양행을 결심하고 길을 나선다. 서울에서 걸어서 봉일천까지 이른 그는 봉일천시장 주막에서 고단함을 달래며 술을 마시다 이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여로의 피곤함과 평양에 빨리 가서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애절한 마음이 잘 녹아 있는 이 시는 조리읍 주민자치위원회 김훈민 사무국장이 발굴했다. 그는 조리읍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다 한국전쟁 때 조지훈 시인이 조리읍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관련 작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곧바로 지훈문학관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지훈문학관은 미발표 작품 중 <봉일천 주막에서>을 찾아냈고, 그에게 작품 전문을 보내주었다. 그는 “봉일천시장 구역에는 많은 근대문화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근대문화 특화시장 콘셉트로 시장을 관광상품화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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